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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지명유래
    게시판/삶의지혜 2011. 9. 6. 19:53

    1. 거린사슴

    위치 : '녹하지오름'에서 동북쪽으로 약 2.3㎞정도 올라간 이 오름은 남서 사면의 광활한 목장지대와 경계를 이루고 가장자리에 가로누워 멀리 해안선을 굽어보고 있다. 표고 743m에 비고는 남서쪽으로 100m정도 된다.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 '주봉'을 두고 양쪽으로 두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대포동 산 2-1번지 일대이다.

    이름 : '거린사슴'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북동에서 남서로 이어지는 세 봉우리의 능선이 어찌 보면 세 개의 작은 오름이 서로 어깨를 걸고 나란히 있는 것 같다는 점, 둘째는 옛날 이 오름에 사슴이 많이 살았고, 또한 사슴을 길렀다고 하여 불려지고 있다는 점, 셋째는 이 곳의 봉우리들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점에서 '거린사슴'이라 부른다고 한다. '거린'은 '갈라지다'의 제주어이다.

    주변 : 주봉'과 북동쪽 봉우리 사이에 고갯마루를 형성하는데 여기를 1,100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2. 알오름

    위치 : 탐라대학교 북쪽으로 중문마을 '움텅밧' 동편에 위치한다. 대포동 산 1번지 일대이다.

    이름 : '거린사슴'에서 동쪽에는 '갯거리오름'이 위치하고 서남쪽으로 '알오름'이 있는데 대포 지역에 있는 오름 중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알'은 '아래'의 제주어이다.

    주변 : 제2 횡단도로가 바로 옆으로 뚫려 있으며 동쪽으로 서귀포시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여름철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3. 갯거리오름

    위치 : '거린사슴'에서 동남쪽에 있는 작은 오름으로 대포동 산 1-8번지이다.

    이름 : 지명 유래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거린사슴' 중턱의 1,100도로변에서 운전자들이 쉴 수 있도록 간이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주변 : 인적은 없고 주변에 잡풀과 나무만 무성하다.



    4. 동수

    위치 : 대포동 356번지 일대이다.

    이름 : 회수마을에서 볼 때 동쪽에서 물이 솟아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대포마을에서 분가된 '동수동네' 또는 '대포상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이 물을 먹었으며 회수마을 주민들도 식수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주변 : 이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고 일대는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5. 동수동네/대포상동

    위치 : 대포동 301번지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말한다.

    이름 : '소동이터'에 거주하던 일부 주민이 이주하여 '동수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던 곳으로 30∼50가구 정도가 거주하다가 4·3사건으로 인하여 대부분은 회수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대포 마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주변 :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6. 동해성/동해방호소

    위치 : 대포동 368번지 일대이다.

    이름 : 외침이 많아지면서 도내에는 지역 방어에 필요한 방호소, 수전소, 연대, 봉수, 환해장성, 진 등이 만들어지기 시작되었다. 제주도를 가장 오랜 기간동안 지배했던 몽고의 수탈이 끝나자 숱한 외침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는 지방관을 무관으로 파견하였지만, 넓은 지역을 한정된 인적 자원으로 방어하기란 실로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자의 판단에 따라, 성곽이 새로 쌓여지고, 현청 소재지가 옮겨지기도 하였으며, 방호소가 폐쇄되거나 새로 축조되었다.

    동해성(東海城)은 지난 날 '도래물'이라 불려졌던 회수마을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동해방호소(東海防護所)는 동해포에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동해방호소가 이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강정마을에 있던 가래방호소(加來防護所)를 1510년(중종 5년) 당시 제주목사였던 장림(張琳)에 의해 동해포로 옮겨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종 5년 9월 16일 제주목사 장림은,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와서 방어 시설에 대한 느낀 바를 조정에 보고하면서 『 .... 정의현의 수산포와 서귀포, 그리고 대정현의 차귀포와 동해포(東海浦)는 적들의 배가 머물 만 한 곳으로 의심이 됩니다. 때문에 이미 설치되 있는 방호소에 육군 1려(旅)를 나누고 2교대로 나누어 군관을 보내 방어토록 하였습니다. 수산과 차귀포에는 옛 성을 고쳤고, 함정과 말뚝을 세워 침입에 방비하였습니다만, 나머지 7포는 원래부터 성(城)이 없었으므로 방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함경도나 평안도의 예에 따라 성을 쌓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각 성 근처에 사는 백성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지으면서 출입케 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남사록(1601년, 김상헌) 10월 16일 동해방호소(東海防護所)에 들려 점심을 하고 나서 물품을 점검하였다. 성 둘레 280척, 높이 8척, 서쪽과 남쪽에 문이 있고, 옛 성은 허물어져서 목사 성윤문 때 개축하였으며, 초창(草創)이므로 수비군이 없다.

    탐라지(1653년간)에는 『동해방호소에는 객사와 군기고가 있는데, 정덕 경오년(1510년)에 가래방호소를 여기로 옮겼다. 차귀성에는 영차 1명이 있으나, 동해방호소에는 단지 대정 1인만 근무하고 있다"(耽羅誌 東海城內 有客舍 軍器庫 正德庚午移 加來防護所于 此遮歸有營差 旅帥一人 東海只有隊正一人)』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해성은 대정현 동쪽 45리에 있으며, 석축으로 주위가 500척이요 높이는 8척이며 성안에 샘물이 있다(東海城 在縣西四十五里 石築周五百尺 高八尺 城中有泉)』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샘이란 '동이수(동해수)'를 가리킨다.

    주변 : 그러나 현재 이 곳에서는 그때의 '방호소'나 동해성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당시 지역주민들의 식수로, 또는 남는 물로 전답을 일구었던 '동해수'는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동네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나, 이제는 샘 주변 모두가 매립되어 인근 과수원의 농업용수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하원과 회수를 있는 앞내 옆에는 4·3사건의 아픈 상흔을 겹겹이 안은 채 길목을 지키는 성담이 있고 건너 동산 구산망에는 구산봉수가 있어, 지난 날 이 곳이 성지(城址)였음을 느끼게 하고 있을 뿐이다.



    7. 원머들왓

    위치 : 중문상고 뒤쪽으로 옆에 회수의 '장터코'가 자리한다. 대포동 450번지 일대이다.

    이름 : 지명 유래는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았었고 바로 뒤로 '요드렛당'이 있다. '머들'은 땅 위에 있는 큰 바위나 커다란 돌,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8. 송잣내/송장내

    위치 : 대포동 620번지 일대의 하천으로 '개소'를 지나 '선귓내'로 이어진다..

    이름 : 정확히 알려진 유래가 없다. 이 내 속에는 '개소'와 같은 '뱅이' 통이 있다고 한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 내를 건너온 사람이 정지에 들어가면 시루떡이 익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부정한 내라고 한다. '뱅이'는 방애, '잣'은 성담보다 작게 쌓은 돌담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물이 없이 말라있을 때가 많고 내 주변은 감귤원이 조성되었다.



    9. 내조솜

    위치 : '절모루' 위에 자리하며 대포동 556번지 일대이다.

    이름 : 양쪽에 '큰이물'과 '송잣내/송장내'가 위치하여 유래된 것이라고 하고 '천간원(川間員)'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천간원'은 하천 사이라는 의미이다.

    주변 : 뒤쪽으로 중문상고가 있고, 일대에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10. 개소

    위치 : '절모루' 옆에 위치하며 대포동 1223번지 일대이다.

    이름 : 물의 깊이가 1m정도로 수심이 아주 깊은 것은 아니나 바닥 모양이 '놋사발' 같은 모양의 팽이처럼 생긴 곳이 있는데, 아주 깊어 한번 들어간 사람은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과거 50년 전만 하여도 3년에 한번씩 꼭 이 곳에서 사람이 실족하였다고 한다. 지명 유래에 대해 전해지는 바는 없다.

    주변 : 과거에는 우마들을 이 곳에서 물을 먹이곤 하였는데 지금은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동쪽에는 약천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일대에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11. 어두동

    위치 : 중문상고 서남쪽에 위치하며 대포동 670번지 일대이다.

    이름 : 지형이 바다 고기 머리 같은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두동(魚頭洞)'이라는 동네를 이루어 과거 4·3사건 이 전까지만 하여도 20호정도 살았었다. 그 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대포 마을로 이주하였다. 어두동 동북쪽에 위치한 동산을 '어두모루'라고 부른다.

    주변 :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12. 궤우당동산/계우당동산

    위치 : 현재 중문동 동사무소 동쪽에 있는 동산으로 대포동 888번지 일대이다.

    이름 : 이 곳의 지형이 '닭 날갯짓' 형상이어서 '계우(鷄翼)당동산'이라고도 하고 이 동산에 조그마한 '궤'가 있는데 옛날 ''당이 있었다 하여 '궤우당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변 : '당'에 걸인들이 모여 살아 마을에서 '당'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궤'만 남아 있으며,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13. 개남밧

    위치 : 마을 동쪽으로 대포동 953번지 일대를 말한다.

    이름 : '개남'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남'은 누리장나무, '밧'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개남'은 없어지고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14. 구린질

    위치 : 대포동 732번지부터 1502번지까지의 길을 말한다.

    이름 : 길이 아주 험하고 지형이 경사져 비가 오면 '앞내'로 인해 흙이 전부 쓸려가고 돌만 남아 항상 돌길을 이루었다고 한다. '구린'은 갈라진, '질'은 길의 제주어이다.

    주변 : 동사무소 동쪽에서 대포마을로 들어가는 길로 지금은 포장이 되었고 과거의 모습은 찾을 방법이 없다.



    15. 활쏜밧

    위치 : 마을 동북쪽으로 대포동 830번지 일대이다.

    이름 : 과거 무인들이 이 곳에 큰 나무를 세워 활 쏘는 연습을 하던 장소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서 활을 쏘면 그 활이 '불목당'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밧'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일부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고, 서쪽으로 풍림빌리지가 위치한다.



    16. 앞내골챙이

    위치 : '구린질' 앞에서부터 '기정목' 밑 부분으로 대포동 1529번지∼2029-1번지 일대이다.

    이름 : '구린질' 앞에 내(川)가 있기 때문에 '앞내'라 하고 '기정목' 밑 부분의 '골챙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골챙이'는 '고랑창'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비가 오면 '내치는(범람)' 곳이었으나 최근 공사로 앞내를 넓혔기 때문에 지금은 아주 큰 비가 올 때가 아니면 내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내치는'은 물이 '범람하는'의 제주어이다.



    17. 기정목

    위치 : 마을 동쪽이며 대포동 2029-1번지 서쪽 일대이다.

    이름 : '기정' 바로 서쪽으로 길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 '목'을 이용하여 포구로 갔었다고 한다. '기정'은 절벽 또는 벼랑, '목'은 입구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지금은 큰 길이 되었으나 '기정'은 아직도 남아 있다.



    18. 써근빌레

    위치 : 마을 동쪽에 위치하며 '소굼물', '코댕이모루'로 가는 길로 대포동 2036번지 일대이다.

    이름 : 이 곳은 길이 험할 뿐만 아니라 흙덩어리 같은 돌도 아니고 흙도 아닌 썩은 토석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써근'은 썩은, '빌레'는 땅속에 묻혀 있는 암반이나 커다란 돌이 조금 땅 위로 나타나 있는 상태의 제주어이다.

    주변 : 지금은 과수원이 조성되었다.



    19. 광대터

    위치 : 대포동 1416-2번지 일대이다.

    이름 : 과거 대포마을 강씨가 '유학'이라는 벼슬을 얻게되자 광대들이 놀고 갔던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 :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다.



    20. 코뎅이모루

    위치 : 대포마을 동쪽에 위치하는 높은 동산을 말한다. 대포동 1320번지 일대이다.

    이름 : 동산의 지형이 '코'모양처럼 높이 솟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뎅이'는 높은 곳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일대에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 곳에는 할망당, 요드렛당, 토산당 등이 모셔져 있다.



    21. 할망당

    위치 : '코뎅이모루' 위쪽 대포동 1320번지에 위치한다.

    이름 : 4·3사건 전까지 '불목당'에 모셔졌던 대포 본향을 4·3 당시에 이 곳 '할망당'에 모셔 왔다고 한다. 이 당은 '일렛당'이며 밑으로 토산당이 있고 '코뎅이모루' 아래 부분에 '요드레당'이 있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22. 큰솔동산/포제동산/상디동산/상두동산

    위치 : 대포교회 길 동쪽으로 대포동 1542-3번지 일대를 말한다.

    이름 :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포제'를 지냈던 장소에서 유래한다. 이 곳에 큰 소나무가 있어 '큰솔동산'이라고도 부르며, 옛날 대포, 중문, 회수의 상두(上頭)들을 마을의 일을 보던 급사가 고함을 쳐 이 곳에 모이도록 하였다 하여 '상두동산' 이라고도 불렸으며, 그 후에 '포제'를 지내면서 '포제동산'으로 불렸다. '상디'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군중, 또는 마을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주변 : 마을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23. 골마금동네

    위치 : 대포동 1641번지 일대이다.

    이름 : 골목으로 들어가면 길이 막혀 있어 불려진 이름이다. '골'은 골목, '마금'은 막음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지금은 길이 뚫려 있다.



    24. 소낭밧/못디

    위치 : 마을회관 앞쪽으로 대포동 1867-8번지 일대이다.

    이름 : 큰 소나무가 있어 '소낭밧'이라 하였고, 못(沿)이 있던 자리라 하여 '못디'라고도 한다. 이 일대에 75년 전 당시 가옥들이 전부 초가집이었을 때 방화수로 사용키 위해 이 지역을 파서 못을 만들고 그 후 50년 동안 방화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우마에게 물을 먹이기도 하였다. 못이 있던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낭'은 소나무, '밧'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당시의 못은 메워져 농협창고가 자리하고 있고, 시내버스 종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25. 팔용당

    위치 : '앞내' 옆으로 대포동 1560번지 일대이다.

    이름 : 과거 이 곳에 원씨 성을 가진 사람이 8남 4녀를 두었는데 8명의 남자아이들이 마치 용처럼 기골이 장대해서 여덟 마리의 용과 같다 하여 팔용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주변 : 그 당시의 집은 없어지고 주변에 나무만 심어져 있다.



    26. 오등이궤

    위치 : '앞내골챙이' 동쪽에 위치하며 대포동 1506-1번지이다.

    이름 :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5∼8명 정도가 쉴 수 있는 크기이며 위치가 감귤원 한가운데 있어 이 곳을 감귤저장고로 이용하기 위하여 굴을 파다가 돌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돌칼은 제주대학교에서 발굴 조사하여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주변 :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고 지금 이 '궤'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27. 독동산

    위치 : 마을회관 북쪽으로 대포동 2001번지 일대이다.

    이름 : 대포마을 형국을 살펴보면 사방이 동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가 오목하여 암탉이 알을 품은 형세인데 주위의 '큰솔동산'에 큰 솔개가 고개를 숙여 알을 먹으려고 마을을 향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동산은 닭이 계란을 품은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독'은 닭의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28. 소록돌

    위치 : 대포동 2009번지 일대이다.

    이름 : 바위가 마치 솔개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록'은 '소록기'로 솔개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29. 굴게낭동산

    위치 : '동물개동산'의 동쪽에 위치하며 대포동 1923번지 일대이다.

    이름 : '굴게낭'이 있었던 동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은 지대가 낮고 허하여 사시사철 푸른 '굴게낭'을 심어 허한 기운을 막았다고 전한다. '굴게낭'은 '굴거리낭'으로 굴거리나무의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30. 진동산

    위치 : 마을 서북쪽에 위치하며 대포동 1698번지 일대이다.

    이름 : '알진동산'에 반하여 북쪽에 위치하고 동산이 길게 늘어져 있어 불려진 이름이다. '진'은 길다의 제주어이다.

    주변 : 관광단지 동부지구 내에 수용되어 있다.



    31. 알진동산

    위치 : 대포마을 남쪽으로 '동물개동산' 바로 앞쪽에 위치한다. 대포동 1662번지 일대이다.

    이름 : 마을 남쪽에 있고 '진동산'의 아래로 길게 늘어진 동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알'은 아래, '진'은 길다의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32. 선돌동산

    위치 : 마을서쪽으로 대포동 1732-1번지 일대를 말한다.

    이름 : 과거 대포마을 설촌 후 오래되지 않았을 때 이 동산 위에 있는 돌이 저절로 일어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 : 당시 이 돌의 방향이 예래마을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예래마을에서는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다. 후에 영문을 알아보니 이 돌 때문이라고 하여 예래마을에서 이 돌을 보고 '화봉(火烽)'이라고 하며 안 좋게 여기다가 밤을 틈타 몰래 와서 아래로 돌을 굴려 부셔 버렸다고 한다.

    주변 : 이 곳은 낙조가 좋기로 유명하고, 지금은 20년생 정도의 팽나무가 심어져 여름철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33. 소르기동산

    위치 : '선돌동산' 서쪽 옆 동산을 말한다.

    이름 : 동산의 형상이 '소르기'가 마을로 돌아앉은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르기'는 솔개의 제주어이다.

    주변 : 마을에서 포구로 내려가는 길이며 주변은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34. 너븐밧

    위치 : 마을 서쪽 동네 이름으로 대포동 1817번지 일대이다.

    이름 : 넓은 밭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너븐'은 넓다. '밧'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다.



    35. 절모루/사지원

    위치 : '도욕샘'의 위쪽이며 약천사 북쪽에 있어 대포동 1170번지 일대이다.

    이름 :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루'는 동산, 꼭대기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절모루와 '도욕샘'에서 80m정도 올라간 위치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고 '절모루' 주변은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36. 큰동산

    위치 : 대포마을 남쪽에서 제일 높은 동산을 말하며 '동물개동산' 서쪽에 위치한다. 대포동 1786번지 일대이다.

    이름 : 그 일대에서 제일 높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동물개동산'과 높이는 비슷하나 주위가 더 크다.

    주변 : 관광단지 동부지구 내에 수용되어 있다.



    37. 도욕샘/할망물

    위치 : 대포마을 동쪽으로 약천사 앞쪽에 위치한다. 대포동 1165번지 일대이다.

    이름 : 샘이 '도욕세기'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욕세기'는 쌀을 씻는 그릇을 말하며, '도욕'은 물레의 고동, '세기'는 작은 그릇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이 곳에 물이 나서 그 주위를 둘러 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주변에 '구명물' 옆으로 김평곤스님이 '약천사'라고 하는 초가암자가 있었고 '도욕샘' 동북쪽에 '할망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서 사용하였다고 하여 '할망물'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아주 깨끗하여 마을 농포제나 토신제등 큰제를 지낼 때에 주로 이 물을 떠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이가 괴로울 때에도 이 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주변 : 지금은 약천사 내에 속하며 주위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다.



    38. 구명물

    위치 : '도욕샘' 위에 있으며 약천사 경내에 위치한다.

    이름 : 가뭄에는 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땅 속에서 물이 솟는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이 '구명물'을 이용하여 하원 '동신답'으로 끌어당겨 논에 물을 대었다. '구명'은 장마나 큰 비가 내렸을 때 저지대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도욕샘'과 함께 약천사 경내에 있어 약천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39. 구답터

    위치 : '도욕샘' 주변 앞쪽으로 대포동 1190번지 일대이다.

    이름 : 오래된 논이 있던 곳이라서 '구답터(舊沓)'라 부른다. '도욕샘'에서 물을 끌어다가 이용했다고 한다. '구답터' 아래에는 하원 지경의 '신답'이 있다.

    주변 : 지금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도욕샘'과 함께 약천사 경내에 속한다.



    40. 선궤

    위치 : '절모루' 앞에 있으며 대포동 1208번지 일대이다.

    이름 : 바위 하나가 서 있음으로 하여 만들어진 '궤'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궤' 양쪽으로 흐르는 내를 '선궷내'라고 한다. '궤는 작은 바위그늘집정도의 작은 굴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주변 : 옛날에는 논이었는데 지금은 '궤'만 남고 빈터이다.



    41. 선궷내/선귓내/선귓물

    위치 : 하원과 대포마을의 경계선으로 대포동 2602번지 하천이다.

    이름 : '선궤' 주변으로 흐르는 내를 말한다. 이 내 속에서 큰 물이 솟아나는데 그 곳을 일컬어 '선귓물'이라 하고 '선귓내'는 '선궤'를 사이로 양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구신목' 아래 부분에서 합류되어 바다로 흐른다.

    주변 : 지금도 '선귓물'은 '도욕샘'의 물과 함께 일대 과수원의 중요한 농업 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42. 구시목

    위치 : 대포동 1221번지 옆 일대를 말한다.

    이름 : '할망물'에서부터 '검좌리'까지 물을 끌어당길 때 큰 나무를 이용하여 '구시'를 만들어 '선귓내' 옆으로 물을 대었던 것에서 유래하며, '구시'는 구유의

    제주어이다. 이렇게 '구시'를 이용해 논물을 댄 논을 '구시논'이라고도 한다.

    주변 : 내 속에 잡풀이 무성하여 자취를 알아 볼 수가 없다.



    43. 동꼴왓

    위치 : 대포 포구의 동북쪽으로 서쪽에는 '소동이터'가 있다. 대포동 2164번지 일대이다.

    이름 : 동쪽 골짜기에 있는 밭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꼴'은 '골'로서 골짜기,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44. 소꿈물동산

    위치 : 대포마을 동쪽으로 대포동 2606번지 일대이다.

    이름 : 구 '포제동산'으로 지명유래는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과거에 아이가 죽으면 이 곳에 묻었기 때문에 이 곳을 어린아이 공동묘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45. 고개동산

    위치 : '검좌리' 바로 위쪽에 위치하며 대포동 2267번지 일대이다.

    이름 : 고씨의 선묘(先墓)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고씨 일가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처음에는 '고씨동산'이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주변 :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도로가 가로질러 있다.



    46. 절터왓

    위치 : 대포포구 북쪽으로 대포동 2087번지 일대이다.

    이름 :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서는 절에서 쓰이는

    '주춧돌(礎石)'이 발견되었는데, 마을 인가로 옮겨졌고, 다시 약천사 경내로 옮겨졌다고 한다.

    주변 : 나머지의 돌들은 깨어져 과수원 담으로 사용되었다.



    47. 소동(少童)이터

    위치 : 대포 포구에서 1㎞정도 떨어진 곳이다. '저배낭궤' 옆에 있으며, 대포동 2084번지 일대이다.

    이름 : 아이들이 놀던 장소로 지금의 어린이 놀이터를 가리킨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대포마을이 처음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변 :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48. 동물개동산

    위치 : 마을회관 남쪽으로 '굴게낭동산'을 지나서 서쪽에 위치한다. 대포동 1808-2번지 일대이다.

    이름 : '앞내'가 넘치면 대포 '기정목' 100m 위에서 마을회관 서쪽으로 하여 '동물개동산' 남쪽을 거쳐 '연대' 밑 바다로 흘렀다고 한다. 그 후 '팔용당'의 '원씨'가 내를 막아 일부를 매립하여 농경지를 만들었고 내는 '기정목'으로 하여 큰갯물로 흐르게 되었다. 이 동산은 아이들이 노는 장소였으며 '큰갯물포구'로 가는 길이다. 지명에 관한 유래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주변 : 이 동산에서 보면 바다와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49. 대포연대

    위치 : 대포동 2506번지이다.

    이름 : 대포연대(大浦煙臺)는 대포마을 동남쪽 해안에 있다. 동쪽으로는 강정동 마흘천(馬吃川) 서쪽 동산에 있는 마희천연대와 중문의 별노천연대(別老川-중문골프장 팔각정)와 서로 교신한 대포연대는, 서귀포시 관내 연대 가운데는 기단석이나마 비교적 많은 자취가 남아 있다. 바로 연대 밑이 25m의 벼랑인 것처럼, 동서로 관망하기에 알맞은 요지이다.

    지금은 해안쪽으로 동서 1,5m의 높이의 기초석과 연대 동향으로 남북에 걸처 약간의 기초석만 남아 있을 뿐인데, 6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이 곳에는 3∼4m의 연대 석축이 있었다고, 이 마을 김항선(金恒善 74세/1997)옹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김옹께서도 이 곳에서 연대불을 밝히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대포연대에 관한 자료는 다른 연대와 마찬가지로 제주삼읍봉수연대급장졸총록(濟州三邑烽燧烟臺及將卒摠錄)에 보면 "대포연대는 동쪽으로는 마희천연대와 서쪽으로는 별노천연대와 교신을 하였고, 별장(別將) 6명과 직군(直軍0 12명이 근무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봉수와 연대마다 근무한 군인들의 숫자는 일정치가 않다. 제주목(濟州牧) 관할이었던 사라(紗羅)봉수인 경우에는 별장 6인, 봉군(烽軍) 36인이 근무하였으나, 수산(水山)봉수에는 별장 6인, 봉군 24인이 근무하였고, 대정현(大靜縣) 소속이었던 귀산(龜山)봉수에는 별장 6인과 봉군 12인이 근무하였다.

    또한 전라도봉수연대급장졸총록성책(全羅道烽燧烟臺及將卒摠錄成冊-연대미상, 규장각 소장)에는, 전라도내의 각 봉수마다 별장 6∼13명, 오장(伍將) 1∼12명, 감고(監考) 1명, 군(軍) 9∼31명, 보인(保人) 14∼60명까지 근무하였고, 매월 초하룻날에 교대 근무하였다고 하였으며, 연대와 연대간의 거리를 육로(陸路)와 수로(水路)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대정현에 소속된 대포연대는 직선거리로는 강정마을의 마희천연대와 약 4km, 서쪽의 별노천연대와는 약 2.6km가 된다.

    현재 연대가 있는 바로 밑 해변을 '연디밑'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곶을 '도리발', 서쪽에 있는 절벽은 '당앞케'라고 부른다. 대포연대는 1996년 7월 18일 제주도 기념물 23-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9년도에 복원될 예정이다.

    주변 : 현재 주변에는 대포 전경초소가 있다.



    50. 성 담

    위치 : 대포마을 남·서쪽 일부 지역에 있었다.

    이름 : 과거에는 마을이 사방으로 뚫려 있어 주위가 허하면 마을이 '부'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포마을 3대 이장을 지내셨던 '고영후'씨가 성담을 쌓을 것을 권하여 마을 중 유난히 허한 곳을 골라 마을주민들이 부역하여 성을 쌓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주변 : 현재 '큰솔동산'에 유학 고영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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