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pecial] 올레길3년, 스위스에도길을내다[중앙일보2010-09-11]“스위스서도제주서도세계인이올레를걷는게길내는여자서명숙의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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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말까지스위스에제주올레길5개가놓인다. 체르마트올레길의서명숙제주올레이사장이이길에세워진‘간세’를잡고활짝웃고있다. 뒤에보이는흰색기슭이마터호른(4478m) 능선을따라이어진빙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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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올레길이생겼다. 자초지종을알지못하면뜬금없는소리라고고개부터저었을일이다. 하나정말이다. 사단법인제주올레서명숙(52) 이사장은지난3일스위스의관광도시라보(Labaux)에‘간세’를세웠다. 간세는‘간세다리’(게으름뱅이를뜻하는제주방언)에서따온말로, 제주올레길목마다서있는조랑말형상의올레이정표다. 올레꾼(제주올레를걷는사람)은오로지간세가가리키는방향을따라걷는다. 간세는올레의영토를표시하는일종의국경이다.
스위스에간세를꽂았다는건, 제주올레가저멀리스위스땅에도생겼다는얘기다. 불과3년만에신드롬을불러일으키며대한민국을대표하는도보여행지로떠오른제주올레가드디어스위스에진출한것이다. 그현장에j도있었다.
j는서명숙이사장과함께스위스가자랑하는하이킹코스를일주일동안걸으며제주올레가스위스에간까닭을들었다.
라보·체르마트(스위스) 글·사진=손민호기자
● 스위스에서뵙게되니더반갑습니다.“맨처음구상할때부터올레는제주도사람을위한길이아니었어요. 뭍에서제주도로내려와올레를걷기바랐고, 더나아가세계인이제주올레를걷는걸꿈꿨어요. 제가고향에내려가서길을내겠다고결심한게산티아고길을걸은다음이잖아요. 길이길을낳은셈이지요.”
(※서명숙이사장은전직언론인이다. 2006년9월직장을팽개치고스페인의산티아고길을걷겠다고홀연히떠났다. 800㎞순례길을걷고난뒤고향제주도로내려가올레길을내기시작했다.)
● 자초지종이궁금합니다.“지난해말쯤스위스에서먼저연락이왔어요. 스위스에제주올레를내고싶다고. 그래서올봄두나라에우정의길을내기로협정을맺었고, 7월제주도에먼저‘스위스-올레우정의길’을냈어요. 바다가좋은10번코스를우정의길로골랐죠. 스위스는바다가없잖아요. 7월행사때스위스대사도내려왔고, 스위스관광청부사장도스위스에서날아와서올레를걸었어요. 이번엔우리가스위스에올레길을낼차례가된거예요.”
● 스위스와제주올레가공동협력을하면스위스에만유리하지않을까요. 한국인은스위스에많이가는데, 스위스사람은한국에그만큼안오잖아요. 한국시장을노린스위스정부의마케팅수단으로보이는데.(※스위스의한해해외관광객수는약1600만명이고, 이중에서약1%인16만명이한국인이다.)“사실스위스와협약을하기로결심한건, 스위스에서배울게많다고판단했기때문이에요. 스위스는관광선진국이잖아요. 그관광대국의시스템을배우고싶어요. 스위스면적이우리나라경상도정도라는데하이킹을위해낸길만해도6만㎞가넘는대요. 우리가양해각서(MOU)를교환한것도어찌보면놀랍지않아요? 스위스에서올레를안다는게신기하지않으세요? 공무원들이일사천리로일하는속도도부럽더라고요. 제주도에선공무원하고일하려면복잡해서속터져요. 해주는건없으면서간섭은뭐그리많은지….”
● 여기일정은어떻게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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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호른아래호숫가에서(위). 아래사진두장은라보포도밭에서다. 맨아래사진뒤편에보이는파란물이레만호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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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1일들어왔고, 스위스에서약20일간머무를계획이에요. 모두5개도시를방문하는데도시마다제주올레를내기로했어요. 라보부터체르마트·인터라켄·베른그리고루체른. 스위스는길을다섯개나내주는데우리는하나만준다고해서스위스쪽이조금섭섭한가보더라고요. 그래서하나정도더내줄까생각하고있어요.(웃음)”
(※j가함께한일정은라보와체르마트지역이다. 유럽에서둘째로큰호수인레만(Leman) 호숫가의작은도시라보는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된포도밭으로유명하고, 체르마트는마터호른(4478m) 기슭에들어선세계적인산악휴양도시다. 두도시에선지방관광청직원이참석한가운데간이행사를열었고, 스위스정부차원의공식행사는다음주베른에서진행될예정이다.)
● 직접둘러보니까어떠세요.“다부럽죠. 라보포도밭은한국의다랑논처럼생겼잖아요. 천년이넘는세월동안이가파른산기슭에서흘린농부들의땀방울이이장엄한풍경을일궈낸거잖아요. 더놀라운건, 이포도밭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받기위해라보주민이똘똘뭉쳤다는사실이에요. 거대자본이일대포도밭을개발하려고드니까주민들이‘포도밭이세계문화유산이되면개발을막을수있겠다’고묘안을짜서실행에옮겼다는거예요. 체르마트도굉장한곳이에요. 이마을안에선오로지전기자동차만달릴수있어요. 탄소를배출하는일반승용차는마을안으로들어올수없어요. 기차만체르마트로진입할수있어요. 승용차를타고왔다면체르마트에서기차로12분거리에있는타슈(Tasch)라는마을에차를세워놓고기차로갈아타야돼요. 체르마트에서운행하는모든승용차는, 심지어경찰차나구급차, 택시도이마을에서제작한전기자동차예요. 전기자동차한대만드는데1억원이훨씬넘게든대요. 이모든게지역주민이앞장서쟁취한전통이자성공이에요. 해발1620m의고산마을에관광객이너무몰려드니까, 도로를새로닦고주차장새로만드느니차라리차량을막은거예요. 놀랍지않으세요?”
● 제주도에당장적용할수있는아이디어라도얻었나요.“가파도에올레길을낼때가장걱정했던게있어요. 관광객이한꺼번에몰려들면이작고예쁜섬도금방망가질수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이장님하고상의한끝에가파도에차를실은배가들어가지않는다는조건을걸고10-1 코스로가파도올레를냈어요. 사실지금걱정되는곳이우도예요. 우도올레(1-1 코스)가올레꾼의불만이가장많이접수되는코스예요. 올레길을달리는자동차와스쿠터때문이에요. 우도에차를실은배가들어가잖아요. 우도에차가안다녔으면하는바람인데, 여객선을운항하는사람도우도사람이어서대놓고반대할수도없어요. 라보와체르마트를걸으면서내내우도생각을했어요. 두마을모두주민이앞장서막무가내개발을막았잖아요. 좋은방안이없을까궁리중이에요.”
● 이번스위스일정을제주올레의해외진출첫사례로봐도될까요.“사실제일먼저연락이온건일본이에요. 일본시코쿠(四國)에있는88개사찰을순례하는오헨로길이제주올레와공동발전을위한협약을맺기로했어요. 그래서지난3월시코쿠에가서오헨로길을걷기도했어요(중앙일보week& 3월19일자1∼3면). 시코쿠관광청하고실무작업은다끝냈는데MOU를교환하는행정절차가예상보다길어지네요. 스위스가첫해외진출이라고보면되겠네요.”
● 제주올레도달라지는게있을까요.“스위스에오면서생각했더니오는17일이제주올레3주년이더라고요. 물론요란한기념식같은건없어요. 제주올레정신하고맞지않으니까요. 벌써3년이지났구나, 그사이에정말많은일이있었구나, 이런저런상념에빠지게되더라고요. 시간이지날수록제주올레도어떻게든달라지겠죠.”
● 처음제주올레를구상할때지금과같은반응을기대했던건아니지요.“자신은있었어요. 세계어느관광지와비교해도제주도가밀리지않는다는확신이있었어요. 산티아고길에엄청난관광객이몰려들지만, 산티아고길도제주도만큼은아름답지않아요. 다만내예상보다그기간이짧았을뿐이에요. 3년도안됐는데이렇게많은사람이제주올레를찾을것이라곤정말상상도못했어요.”
● 왜이렇게반응이빨리왔을까요.“우리나라사람들이그만큼굶주렸다는뜻이겠지요. 이제껏우리는번잡한관광에너무시달렸잖아요. 올레를걷다가바닷가에서갯것을보면그걸잡으며놀면되는거예요. 그게체험관광이잖아요. 문화와자연을경험하기위해박물관이나전시관에가는것도어찌보면웃기는일이에요. 농촌마다녹색체험관광이라고프로그램을운영하는것도사실은다‘가짜’잖아요. 하지만올레에선모든게진짜예요. 두발로걸어서자신이직접현장을찾아가기때문이에요.”
● 그럼, 지금의올레신드롬을보면서예상하지못한게없었다는건가요.“하나있어요. 제주도사람들이변했어요. 사실올레길을내면서내심걱정했던게있어요. 제주도사람들은상처가많거든요. 늘뭍사람을경원했어요. 그래서외지사람에게제주도사람은무뚝뚝하거나불친절하게보였어요. 제주올레가제주의깊은속살을헤집고다니잖아요. 개발된관광지에선훈련받은, 그러니까대가를바라는미소가생활이돼있지만보통제주사람에겐그렇지가않거든요. 하지만그게아니었어요. 저도놀랐어요. 제주사람에게이처럼친절한마음씨가남아있을줄정말몰랐어요. 올레꾼이길을잃으면경운기로태워주고, 끼니를못챙겨먹었으면밥을나눠먹고, 잠잘곳을못찾았으면자기네자식방을내주는제주사람얘기를올레꾼으로부터들을때마다저는정말감동했어요. 여행지에서마지막까지기억에남는건사람이에요. 풍경은사진을봐야그때의감상이떠오르지만, 사람은사진이없어도잊히지않아요. 그소중한사람의추억을지금제주주민이올레꾼에게선사하고있는거예요. 감사하고뿌듯해요.”
● 올레가워낙유명해지다보니구설도있는것같습니다.“왜없겠어요. 내가올레를내서떼돈을번것처럼떠들고다니는사람도있다고하네요. 아시다시피올레는입장료가없어요. 정부지원금은지도를만든다거나하는사업에만쓰이고, 기업후원금도간세를세우거나화장실을들여놓는사업에만한정돼서쓰여요. 모든경비를다대주겠다는대기업도있었어요. 하지만그건옳지않다고판단했어요. 지금도그원칙은유효합니다. 사무국직원이지금13명이에요. 제가월급을줘야하는사람이13명이란뜻입니다. 하나그들전부가이전직장에서받았던월급의절반도못받고일하고있어요. 그들을언제까지푼돈줘가며쓸수있을지걱정이에요. 돈한푼못받고자원봉사에나선제주주민에겐늘송구한마음뿐이에요. 개인후원금이떳떳한수입으로그나마유일한데, 아직살림이펴일만큼은못돼요.”
● 아예수입이없는겁니까.“그래서수익사업을시작했어요. 자체제작한멀티두건과손수건, 그리고간세인형을팔아요. 인기가아주좋아요. 뭍에서도살수있게끔하자는제안도있었고, 인터넷쇼핑몰제안도있었어요. 하지만모두거절했어요. 제주올레기념품은제주도에와서, 그것도올레길에와서만살수있어야가치가있다고생각해요.”
● 돈이가장큰걱정이겠군요.“돈은별로걱정을안해요. 내가원래셈에약해요. 돈을벌려고길을낸것도아니니까. 당장걱정은11월에열릴걷기축제예요. 앞으로해마다축제를열거예요. 세계에서사람이찾아와올레를걷는건, 내가고향에올레를내겠다고작정했을때부터꿨던꿈이에요. 그첫결실을앞두고있어요. 설레기도하고불안하기도하고그래요.”
길이만나는건결국길이다. 길이끝나는곳에또다른길이있다. 길내는여자서명숙과제주도에서걸었고, 일본에서걸었고, 이번엔스위스에서걸었다.
걷고보니, 길은길을만나또길이되고있었다. 올레길은이제더이상우리만의길이아니다.
j칵테일>> 스위스- 올레우정의길
스위스정부와사단법인제주올레는지난4월서울에서공동발전과협력을위한MOU를교환했다. 7월2일토마스쿠퍼주한스위스대사, 마틴니덱거스위스정부관광청부사장등이참석한가운데제주올레10코스가시작하는화순해수욕장에서‘스위스-올레우정의길’ 선포식을열었다. 제주올레는바다를끼고도는10코스를스위스-올레우정의길로선정했고, 스위스정부는스위스의베른·루체른·체르마트·인터라켄·라보등대표적인관광도시5곳에서하이킹코스를골라우정의길로내놨다. 두나라의우정의길어귀엔제주올레이정표인간세가세워진다. 스위스정부는올해와내년을‘걷기여행의해’로선포하고대대적으로해외홍보를하고있으나외국과길에관해협약을맺은건제주올레가유일하다.
>> 제주올레
올레는원래집대문에서마을길까지이어지는아주좁은골목을뜻하는제주방언이다. 서명숙이사장을비롯한사단법인제주올레(www.jejuolle.org)가2007년9월17일첫코스를개장한이래현재까지정규코스16개와비정규코스5개를합해21개코스의제주올레길을냈다. 총연장길이는347㎞. 제주도성산읍의시흥초등학교에서시작해주로해안선을따라시계방향으로섬을돌며올레길이이어지는데, 현재전체제주도해안선의3분의2 정도까지올레가나있다. 제주올레는요즘한국의걷기여행판도를이끄는일종의신드롬이다. 올레신드롬은제주도를넘어뭍까지이어지고있다. 전국지자체마다제주올레를본뜬걷기코스를만들고있고, 아예‘올레’란이름을빌린길도수두룩하다. 제주올레신드롬이놀라운건, 이모든성과가정부의도움없이민간단체가이뤄낸것이라는사실이다.